이 사진은 결혼식 기념사진으로 1935년 8월 29일(이상의 나이 25살(만) 때) 동소문 밖의 신흥사라는 절에서 거행된 정인택과 권순옥의 결혼식 사진.(사회는 이상이 맡음.) (○)표는 결혼식에서 수염을 기른 웃고있는 이상. 앞쪽 중앙에 발을 모으고 앉은 사람이 신랑인 정인택이고 그 옆에 한복을 입고 앉은 사람이 신부인 권순옥입니다.

    권순옥은 이상이 두 번 째로 개업한 카페 <학(鶴)>의 여급으로 처음엔 카페 주인인 이상과 서로 사랑했으나, 이상의 간곡한 권고도 있고 또한 정인택이 순옥을 사모하여 자살 소동을 빚자 정인택과 권순옥이 결국 결혼을 하게 됩니다. 사진을 크게 보시려면 [여기] 를 누르세요.

    '권순옥'은 소설 <환시기> 에도 등장합니다. 소설 <환시기>는 이상과 정인택과 권순옥, 이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해 거의 사실적으로 기록한 소설로 볼 수 있습니다. 즉 <환시기>에 등장하는 '송군'을 '정인택'으로, '순영'을 '권순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용만의 증언이 있기 때문에 거의 사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시기>의 내용을 따라 당시의 일을 유추해보자면, 금홍이 집을 나간 뒤 이상은 카페 멕시코의 여급인 '순영'을 쫓아다닙니다. '순영'은 막심 고리키 전집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독파한 신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상의 절친한 친구였던 '송군'이 남몰래 '순영'을 좋아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보다 못한 이상은 '순영'에게 '송군'과 결혼하는게 어떠냐고 말하면서 '송군'에게 한번 찾아가자고 해서 둘이서 찾아갑니다. 그랬는데, 문을 여니 유서를 남기고 '송군'이 쓰러져 있어서 헐레벌떡 '송군'을 들춰 메고 세브란스 병원까지 간다는 내용입니다. 이 일은 실제로 정인택과 이상과 권순옥 사이에 일어났던 일로 보이는 부분입니다.

    정인택과 권순옥의 결혼을 주선한 뒤, 이상은 사진에서 보다시피 활짝 웃으며 결혼식 사회를 본 것으로 전해집니다. <환시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눈에선 불이 번쩍 나면서 망신―아니 나는 대체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냐, 순간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얼마든지 나 자신에 매질하고 싶었고 침뱉으며 조소하여 주고 싶었다. 라고 자기 자신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윤태영의 증언을 보면 신랑 신부를 신흥사까지 모신다고 그들을 데리러 떠나는 이상을 보니 '눈물이 나서 손수건으로 눈을 닦으며 길가에 서 있더라'고 말합니다. 재미있고도 슬픈 얘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은 나중에 정인택과 권순옥의 집들이에 선물로 구슬치기 놀이기구를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인택은 박태원과 또 연결이 됩니다. 얘기인 즉슨 정인택과 박태원 등 대부분의 구인회 동인들은 해방 직후에 좌익 활동을 해서 보도연맹이란 곳에 강제적으로 가입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에 이들은 북한으로 납북되게 됩니다. 특히 박태원의 경우에는 가족은 모두 남쪽에 남겨지고 혼자 북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다 1953년 정인택은 병에 걸려 죽습니다.

    정인택과 박태원은 서울 내기로 경성제일고보 동기동창이었습니다. 정인택은 죽으면서 남겨진 가족이 걱정돼 박태원에게 가족을 부탁합니다. 그래서 정인택이 죽은 뒤, 박태원은 썩 내키지 않았으나 권순옥과 결혼하게 됩니다. 물론 남쪽에서는 박태원의 가족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박태원 역시 곧 서울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죠. 어쨌든 박태원이 반신불수가 돼 <갑오농민전쟁>을 구술할 때, 이를 글로 옮겨 쓴 사람이 권순옥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중에 죽기 직전에 박태원은 자신이 죽은 뒤에 권순옥이 북한에서 작가 대우를 받고 살 수 있도록 <갑오농민전쟁> 마지막 권을 자신과 권순옥 공동창작으로 했다고 합니다. 금홍이가 떠나간 뒤에 이상이 잠시 마음을 줬던 권순옥의 파란만장한 삶이 여기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