李箱의 인간사와 정신 분석

[정신분석을 가지고는 예술적 재능의 성질이나 예술가의 기교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으로 창작물을 예술적 기준에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전제 밑에 프로이트(1908)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작가와 작품을 정신 의학적으로 이해하는 길의 문을 터놓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심리 구조의 파악이다 우리는 예로 시적 활동의 첫 흔적 일부를 그 시인의 유년기에서 찾도록 해야겠다 어린이가 가장 열심히 즐기는 일은 놀이(play)다 놀고 있는 어린이는 모두가 하나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냄으로써, 즉 자기 세계의 사물을 자기 마음에 드는 새로운 질서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어른인 시인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어린이도 성장함에 따라 놀이를 그치고 환상(fantasy)과 백일몽(daydream)으로 이를 대치한다.

환상의 특징은 첫째가, 불만족한 생활을 하는 사람일수록 이것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루어지지 못한소망이 바로 환상을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며, 그러기 때문에 하나의 환상은 어느 한 소망의 충족인 동시에 불만족한 현실에 대한 정신적 수정 작용인 것이다 둘째, 환상은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간 사이를 왕래한다.

현재 겪고 있는 일 가운데서 그 어떤 것이 그가 지녀 온 어떤 소원을 환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여기에서 예전의 그 생생한 인상에 연결시키는 마음의 작업이 일어난다 마음의 작업은 즉 그 소원이 충족되지 못하였던 옛날의 체험(대개는 유년기의 체험이 되겠지만)을 기억해 내며, 여기에 다시 미래에 관련된 상황 즉 소망이 완전히 충족된 어떤 상황(바로 백일몽)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현재의 그 계기의 흔적과 과거의 자취를 한 데 지니고 있는 어떤 환상을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과거의 것, 현재의 것, 미래의 것은 한 가닥 소망이라는 실로 꿰어 았는 것이다 (.......) 시나 심리 소설에서는 주인공인 어느 한 인물만이 예외없이 내부로부터 묘사되어 있다 왜냐하면 바로 작가가 그 주인공 마음 한 가운데에 앉아서 내부로부터 밖의 인물들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인간은 현재 그가 겪는 어떤 강한 체험이 계기가 되어 잊었던 어린 시절의 체험이 일깨워지며, 그가 시인일진대 그가 만드는 작품에서나마 이를 충족시키려는 소망이 생기게 마련이다 고로 작품 그 자체에서 우리는 그가 가진 어린 시절의 기억의 일부분였으며 최근에 겪었던 어떤 자극적인 유인의 일부를 함께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자기가 범한 죄목을 대라면 때에 따라서 댈지언정, 자기가 하는 환상의 내용은 그런 경우에서도 좀처럼 말하지 않을 정도로 환상을 하는 인간은 대체로 그 내용을 남들에게 감춘다.

환상하는 내용에 자신이 부끄러워 할 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또는 설사 그 환상 내용을 남에게 말한다 하더라도 그 노출이 남들에게 조금도 즐거움을 주지 못하며 심지어는 그들은 뒤에서 불쾌해 하지 않으면 냉담해지기도 한다.

그러할진대 자기의 환상과 백일몽을 남들에게 알려 주고 정반대로 기쁨과 즐거움까지도 남들이 느끼게끔 하는 시인과 작가들은 무슨 기술을 가졌을까 요컨대 이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백일몽을 인간 모두가 인정하고 싶은 것으로 바꾸어 얘기해 주면 독자들은 그 공통 분모에서 생기는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즉 이들은 나의 자아와 남의 자아를 막는 장벽, 그 장벽에 붙어 있는 혐오감을 제거하는 특수기술을 갖고 있다 그런 고로 시인은 자기의 공상을 가지고 우리에게 순 형식적인, 즉 미적인 쾌락을 줌으로써 우릴 농락한다고나 할까?

이런 뒤 얼마 안 되어 프로이트(1910)는 "네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분석에서 인간은 그 유년기 만 3세 전후하여 일어나는 성에 관한 흥미와 이에서 야기된 호기심을 여러 방법으로 처리하게 되는데 다 빈치의 경우는 그 리비도의 대부분을 연구욕으로 승화시켜 성공의 길을 걸었다고 하여 <예술의 길은 성공적인 리비도 승화의 길>이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해석에 기초를 두고 출발한 작가 심리 연구는 백가제명의 급템포로 전파되어 극단적인 어느 분석가는 [작가들이란 어린 시절 그를 당혹하게 만들었던 인생문제에 포로가 되어 그 뒤로는 정신적 성장을 중단한 사람들]이며,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이 작가인 고로, 바꾸어 말하면 자기 것만 강하게 사랑하는 어린애 같은 사람들이다]라는 말까지 나왔고 이것이 오히려 작가와 비평가들로 하여금 정신분석의 횡포를 규탄하는 현상을 낳게 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작품을 만들 당시의 특수한 시대적 조건과 작가의 특수한 사회적 환경이 작품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정신과 의사는 경시하는 경향을 들어 정신 분석가 하트만, 로엔슈틴, 크리스 등은 생물학적 뿌리보다 사회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이와는 좀 다르게 버글러(1950)는 [작가라는 현상]을 생물학적인 것과 심리적인 그 어떤 것이 곱해서 된 것이라면서 생물학적 요소로서 구강성과 관음성이 박탈된 상태를 포함한 구강성 경향의 양적 증가를 말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크리스(1952)의 큰 공적은 [자아를 위한 퇴행 현상]이라고 창작 활동을 해석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창작이란 어떻게 보면 꿈의 작업과도 비슷하나 꿈에서는 이드가 지배권을 장악하는 반면 창작에서는 자아가 장악하고 있다고 하였고, [이드 자료]를 압도 당하지 않으면서 손쉽게 그것에 접근하고 출입할 수 있고 또한 일차 과정에 대한 통제를 계속 유지하면서 정신 기능을 재빠르고 적절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자아를 위한 퇴행]을 설명하였으니, 요는 [완전 장악하에서의 퇴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뒤에 작가-정신 분열증 환자-평범한 인간의 3집단을 로르샷하 심리 검사법을 써서 대조해 본 임상 심리학자 필립스는 작가군에서 다른 집단보다 좀더 쉽게 진행과 퇴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고한 일이 있다.

이러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신 분석학적인 연구는 그 전형적인 전문지로 미국의 계간 <아메리칸 이마고>를 비롯하여 구미의 여러 분석의 정신 분석 학회지에 쉬지 않고 발표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역동 정신 과학의 도입이 6.25 이후라는 것에서인지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 못하였고, 또 있다손치더라도 그 발표가 학술지가 아닌 문학지와 일반 교양지를 통한 것이 대부분이다.

여하튼 우리나라에서는 이 방면 연구는 1950년대 후반기 유석진의 <화가 이중섭의 정신 분석학적인 연구>와 [이상의 연구]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십 수년이 지나서, [한중록]에 근거하여 사도 세자의 병력을 분석한 뒤 그 갈등의 원인이 되는 '오이디푸스 콤플랙스'의 동양적 해결 방법이 친자 살해로 나타났다고 보고한 이규동의 <의대병에 대한 정신 분석학적 고찰>이 있는데 이것이 대한 신경학회에 개제된 최초의 이 분야의 논문이다 뒤이어 김종은이 <의맥에 병적학의 개념을 소개하였고, 몇 가지의 진전된 실적이 보고되었다.

이듬해 <이상의 이상과 이상>과 <김소월-서정주의 정신 병적학인 연구>을 분석하였다 우리나라의 작가 가운데 이상만큼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으면서 특이한 개인력 때문에 작품치고 그처럼 자주 문학평론가들의 비평대 위에 오른 예도 없을 것이다 이상의 유고를 정리하여 전집을 출판한 임종국은 이상 연구에서의 문학적 한계성을 느껴 정신 분석의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유석진의 이상 연구가 시초가 되겠으나 시간의 흐름 때문에 사장된 감이 있어 오던 중, 이상의 일대기와 많은 작품을 분석하여 분리 불안, 동기간의 경쟁, 양가성, 경조 상태와 정신증적 우울의 연속적 반복, 상동성의 특징을 말하면서 그를 "순환성 성격의 소유자"라고 언급한 이종은의 <이상의 理想과 異相>은 오늘날 이상 연구가만이 아니라 여러 문학 평론가들이 즐겨 인용하는 것이 되고 있다.

그러다가 마침 1975년 이상의 처녀작으로 중편소설 <12월 12일>이 발표되어, 종전까지는 <이상한 가역반응>보다 1년 반이나 앞서 발표된 이 작품으로 그에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려야 된다는 중론을 낳고 있는 바, 이것이 필자가 이 논문을 쓰게 된 동기가 되겠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이 논문을 쓰고자 한다 우선 고은의 <이상평전>에서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에서 비교적 객관성을 띈 내용을 주축으로 삼고 여기에 이상 자신이 쓴 그의 반생을 회상하는 내용의 수상문인 <슬픈 이야기><1936>, <실락원>에서의 <육친의 장><1937>, <종생기>(1939), 김종은의 논문 가운데 나오는 이상의 누이동생 김옥희의 증언, 김용성의 <문학사 탐방기>, 임종국이 이상의 친구 문종혁에게서 청취한 증언과 문이 직접 쓴 것을 인용한 것을 참조로 하여 이상이 <12월 12일>을 쓸때까지의 개인력을 정신 과학적인 기술 방법으로 재정리하였다 그리고 작가의 개인력과 작품의 내용을 서로 비교하여 어떠한 공통점이 있는가의 여부를 알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것이 작가의 개인력 가운데 어떤 점의 영향을 받았고, 인간사의 어떤 사실이 어떻게 변형, 위장되어 작품 속에 노출되었는가를 알아 보았다

(이상의 인간사는 널리 알려져 있기에 여기에 게제하는 것은 생략하기로 하고 바로 3.인간사와 작품 내용의 비교 로 넘어 갑니다 다만 생애의 생략에도 불구하고 꼭 집고 넘어갈 것은 그의 부친과 모친 삶이 부실하였고, 그래 아주 어린 시절에 부모의 슬하에서 떠나 양육되었다는 점과 그가 기거하는 방이 훗날 날개의 방 구조와 흡사한 좁고 어두컴컴하여 햇볕이 연중 들지 않는 방에서 조모와 같이 기거했다는 점, 그리고 그의 약간은 기이한 피부색과 그 당시에 그리 좋은 직업으로 대우받지 못하였던 그림과 문학을 추구했다는 것 또한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화가의 길이 양부에 의해 좌절 되었다는 점등은 이상의 훗날 작가로서의 성격을 규정짓는데 중요한 동기를 부여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인간은 그가 과거에 체험한, 특히 어린 시절에 체험한 상처나 박탈, 좌절을 훗날 공상과 백일몽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때 못다한 욕구 충족을 시키려 한다는 점은 이미 위에서 말한바 있다 작가에게서 그 작품이 처녀작인 경우, 그리고 청소년기에 만들어진 경우, 이 때의 작가에게서는 아직도 자아 방어 기제와 예술적 기교가 미숙한 단계에 있기 때문에 옛날의 상처와 그 정서가 변형, 위장이 안된 채로 작품에 노출되는 수가 많다 크리스에 의하면 그 작품의 성격과 내용이 후작과 틀리는 경우 후작의 제작이 오랜 공백기를 거쳐 되었다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 <12월 12일>이 문학 작품으로서 이상의 다른 작품보다 특이하다 말하고도 싶으나 필자보다는 그 방면에서 전문가인 이어령씨가 이 작품을 발굴하여 첫 개제할 때에, [이 소설은 첫째 리얼리즘에 입각한 전통적인 소설 형식을 가지고 있고, 둘째, '나'의 독백 형식으로 쓰여진 후기 소설과는 다르게 모두 3인칭으로 쓰여져 있고, 셋째 후기 소설에서는 '나'와 여자와의 단절 관계를 썼는데 여기서는 '나'와 가족 간의 단절 관계를 나타나고 있고, 넷째 이 작품은 그의 유일한 중편 소설로서 매우 정상적인 도덕 관념에서 쓰여 졌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정신 분석학적으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앞세워 본다.

작가 자신의 생애와 작품 내용상의 주인공 생애가 대응하여 같거나 혹은 비슷한 사항을 요약해서 도시해 본다.

이상의 실제 생애/작품 12월 12일 속의 주인공
상,백부,생부의 상호관계/그,T,업의 혈연 관계
적빈한 환경/좌동
백부가 평북에 방랑후 귀가/그의 방랑->귀가->경제부흥 경제 안정
생부보다 백부가 더 교양이 있음/그는 T보다 교양 있음
백부가 상에 보인 애정,준엄/그의 업에 대한 익애 및 준엄한 태도
병력 및 전공 선택의 현실적 기준/좌동
생모가 큰집에 갖는 감정/T의 아내가 큰집에 대해 갖는 감정
상이 友 문종혁을 사귐/그가 친구 M을 사귐
상의 생부가 형에 대해 갖는 감정/T가 그에게 갖는 감정
기타/기타

상의 인간사와 비교해 볼 때 <12월 12일>은 그 내용에서 이렇듯 많은 공통점과 상이점을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야 말로 스물 이전의 이상을 연구하는데 좋은 재료가 될 것이라는 처음의 기대에 부합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음에는 이 작중 인물 중에서 누가 상을 대변하느냐를 생각해 보아야겠다 그런데 상이 작품의 서두에서 [나의 반생을 '그'가 대변했다]고 말하였다는 사실과, 작품만으로는 인물 구성상 업이 상의 위치에 온다는 사실이 우리를 혼동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다르게 보면 20대의 상이 성숙한 백부의 눈을 통하여 유치한 상 자신을 (업) 본 것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하게도 된다

이 혼동을 필자는 크리스의 이론을 빌려 이렇게 해결하고저 한다 즉, '그'와 업이 모두 상이 보는 자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성숙한 백부는 상의 자아이고, 의식 세계의 대변자이며,유치한 업은 상의 정신 기능이 일시적으로 퇴행하여 접촉한 상의 '이드'이며 무의식 세계의 자료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 자체가 보여 주는 죽음, 사고, 방화, 위기, 오해, 단절 같은 소재와 분위기는 상이 지닌 무의식의 정서를 대변하리라는 저자의 가상을, 좀 이르지만, 우선 여기에 추가하고져 한다

상은 2세에 부모 곁을 떠나 백부에게 양자로 입적되어 들어오게 되었다.

영국의 정신 분석가 볼비(1969)는 모자 관계를 강조하여 여아는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일차적으로 애착되어야 하는 것으로 대개 어머니나 어머니 역할을 하는 한 인간이 그 대상이 된다고 말하였고, 또 어머니와 분리 되어진 어린이는 그 반응으로서 울고불고 하는 항거의 시기, 비탄과 위축에 빠진 낙담의 시기, 그리고 이에 대비하는 방어로서의 무관심의 시기를 거친다고 하였다

이런 이론으로 볼 때 어머니에서 강제로 떨어짐이 상에게 주었을 상처의 의미와 크기를 우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다음은 어머니에게서의 분리 시기에 대한 고찰이다 즉, 분리 시기에 따라 어린이는 성장한 뒤에 달리 반응한다는 보고가 나와 있는데, 그 중에서 미국의 소아 정신과 교수 하몬드(1975) 등은 생후 6 개월에서 2년 사이에 헤어질 때가 특히 심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고, 또 다른 소아 정신과 교수 로버슨(1971)은 이를 2가지 경우로 나누어 다르게 보았다

첫 번째 경우는 어린이에게서 어머니의 애착이 생긴 뒤이면서 그 사실이 후에 쉽게 기억되지 않는 그런 시기에 헤어진 어린이로서, 이 때는 어머니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쉽게 적응하여 전과 같이 새 애착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두 번째 경우의 시기는 어린이가 좀 더 성장하여 헤어지더라도 그 어머니를 쉽게 기억해 내고 또 언젠가는 그 어머니가 돌아오려니 기대하는 경우로서, 이 또는 어머니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의 애착 현상이 일어나기가 휠씬 힘들다는 것이다. 즉, 이같이 시기적으로 보는 경우 상이 양자가 된 것은 하몬드가 말하는 2세요 로버슨이 말하는 두 번째 경우에 해당되는 고로 생모에게서 떨어지는 것이 한층 어려웠을 것이다

상이 양자가 된 뒤에도 그에게 어머니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로서 조모와 백모가 있지 않았느냐는 답변에 대해 우리는 복수모 기능이란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복수모 기능의 단점으로 사람들은 고아원에서 자란 어린이를 들어 지능과 사회 적응력이 떨어지고 반사회적 성격 또는 약물 중독자가 될 소지가 많다는 소아 정신과 의사 스킬스(1966)의 보고를 인용한다

반대로 장점을 강조하는 또 다른 소아 정신과 의사 미드(1962)는 '키부츠'에서 성장한 이스라엘 어린의 예를 들어 이들이 부모와 떨어지는 것을 잘 참고 성격도 원만하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상의 조모는 너무 늙었으며 또 백모에게는 딸려 들어온 문경이 있었으니, 두 여인 모두 원만하게 어머니 역할을 수행치 못하였을 것으로 필자는 추측하였다

그러나 실은 어머니에게만 분리된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도 분리된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영향은 여자 어린이보다 남자 어린이에게서 더 심하다는 소아 분석 의사 빌러(1970)의 주장을 참작하건대, 그리고 어린이가 모든 환경이 갑자기 변하여 눈익은 것을 일시에 상실하였다는 것을 참작하건대 우리는 상이 받은 충격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상 자신은 이 같은 부모로부터의 분리에 어떻게 정신적으로 반응하였는가

내 마음은 버얼써 내 마음 최후의 재산이던 기사들까지도 몰래 다 내다 버렸습니다 약 한 봉지와 물 한 보시기가 남아 있습니다 어느 날이고 밤 깊이 너이들이 잠든 틈을 타서 살짝 망하리라 그 생각이 하나 적혀 있을 뿐입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는 고하지 않고 우리 친구들에게는 전화 걸지 않고-기아하듯이 망하렵니다.

- 슬픈 이야기 중에서

즉 [내가 잠든 틈에 나를 버렸던 것과 똑같이 나도 너희들이 잠든 틈에 죽어 버리겠다]는 무서운 분노와 복수의 소망이 거이 위장되지 않은 채 이 글에서 노출 된 것이라 하겠다 상이 기술한 [잠든 틈]이란 양자가 될 때에 데리고 갔던 무모가 실제로 그가 잠든 틈을 기다려 몰래 빠져 나왔다는 과거 사실을 의미하거나 아니면 기억도 철도 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표현한다고 보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아 하듯이]라고 강조한 점이다 환언하면 그의 백부에게로의 입적이 가족들에게는 양자로, 그에게는 기아로 받아드려 졌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너희들]은 김씨 일가를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어머니'의 순서가 '어머니,아버지'로 바뀐 것에 유의하여 그의 분노 반응이 어머니 쪽에 더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실락원>의 <육친의 장>을 보면 부모에 대한 그의 무의식의 원한과 증오를 더 알 수 있다

그는 아버지를 [남루하고 무식한 모조 기독]에 비유하였으니 이 말을 바꾼다면 [아무리 가난하고 무식하였을 진정, 박애와 자선의 도는 아무리 지나쳤을지언정 자식까지 남에게 주느냐]라는 조소와 항변이라 하겠다 어머니 역시 같은 글에서 [한 다리를 절름거리는 여인-이 한 사람이 언제든지 돌아선 자세로 내게 육박한다 내 근육과 골편과 또 사소한 입방의 혈청과의 원가상환을 청구하는 모양이다 (.......)

어쩌면 저렇게 심술긋은 여인일까 나는 이 추악한 여인으로부터 도망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환언하면 [이제 와서 나를 낳았다고 주장하여 그 보답을 바라느냐, 당신같은 추악한 여인은 싫다]라는 뜻일 것이다

기아의 신세가 된 그는 [칠 년 지나면 인간 전신의 세포가 최후의 하나까지 교체된다고 한다 칠 년동안 나는 이 육친들과 관계없는 식사를 하리라 그리고 당신네들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또 칠 년 동안은 나를 위하는 것도 아닌 새로운 혈통을 얻어 보겠다-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되나] 라고

-<실락원>에서 기술하듯이 부모를 잊어 버리고 새로운 그 어떤 사람으로서의 탄생을 생각한다 이는 바로 볼비가 말한 무관심, 냉담의 시기에서 겪은 상의 정신 상태를 말하고 있다 저자는 윗글에서 7년이 반복된 사실에 유의를 한다

<12월12일>에서 보자 '7년'의 암흑 속 광산 생활에서 얻을 것은 무엇인가 [육박해 내려 온] 궤도차 때문에 [절름발이]가 되고 [추악하게 변한] 자기 모습을 보고 복수를 맹수하는 주인공 '그'의 모습이 있다 즉, 암흑 속에서 7년을 기다려도 부모는 돌아오지 않으니 그 충격으로 마침내는 복수의 화신으로 변한 어린 시절의 상의 내면 세계가 아닐까 한다

[양자의 마음 속에는 부모라는 대상과의 관계가 양분되어 있는데, 이는 그에게 실제로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인 2쌍의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는 생모가 다시 자기를 찾아오려니 하는 소망을 충족시키려는 환상을 한다 양부모 또한 무의식적인 죄의식 때문에 자연히 이를 양자의 임신과 혈통이라는 것에 투사하고, 또 얻어 기른다는 사실을 들어 자주 어린이를 모욕하고 또 지배하려 든다

그 결과 양자는 자기야말로 귀염도 사랑도 받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깊은 소외감과 열등감에 빠지며, 성장한 뒤 공격적이 되거나 성적인 방종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양자가 된 상을 백부는 몹시 사랑하여 낮에는 사랑방에 같이 데리고 있었고, 오줌을 가리다 다시 못 가리게 된 상의 뒷처리를 손수 해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혹 상이 부모와 동생들을 만나러 가면 호통을 쳤던 것으로 이것이 어린 그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원하는 것을 다 들어 주어야 할텐데] 하는 의문, 당황, 수치, 배반감을 느끼게 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12월12일>에서는 업이 C와 같이 해수욕을 가려는데 '그'가 화를 내며 [용서할 것도 있고 용서하지 못할 것도 있다]고 저지하고 나서 해수욕 도구를 불에 때우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즉, 업도 상이요, 모성애 같은 사랑을 업에게 주었다는 C는 상의 생모요, 해수욕이란 자궁 내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상징하거나 아니면 상 출생 직후 생모가 홀로 탯줄을 자르고 목욕시켰던 그 원초적 기억을 말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생모가 그리워 찾아가는 어린 상을 느낀 이 때 심정은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하는 경지에 이르렀을 것으로, 그의 이런 환상과 숨은 복수심이 작품에서 업이 '그'에게 복수한 뒤 죽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후취이며 전부의 소생을 안고 들어온 백모의 집안내 위치라든가 그녀가 어떤 심정으로 상을 대하였을까 하는 것을 꼭 부정적인 면으로만 추측할 것은 아니겠으나 뒤에 상은 백모를 [증오의 염을 일어나게 하는 여인]으로 표현하였다

또 저자의 흥미를 끄는 것은 <슬픈 이야기>에서 상 자신이 그린 3개의 삽화 (오광수, 1976)를 같이 싣고 있는데 그 중 세 번째 그림이다 즉 여인을 화면 전면에 내세우고 배경으로 산을 뚫고 난 도로를 그린 장면으로 여인의 가슴을 M자 형으로 파고 그 속에 몇 사람의 총을 든 군인들이 튀어 나오는 사진을 몽타쥐해 넣는 것이다

필자의 분석으로는 이것이 M은 문경이요, 군인은 공격적이고 모서운 것인즉 [마음 속에서는 문경만을 생각하고 무섭게 나를 구박하는 여자] 즉 백모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언젠가는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상이라고 없었을 리가 없겠고, 그런 환상이 조금 <12월12일>에서 표출된다고 필자는 보고 싶다 즉 주인공 '그'가 귀국한 첫날 밤 문득 깨어나는 장면이다

그의 의식은 일순간에 명료하여졌다 따라서 그의 귀도 그것이 무엇인가를 구분해 내일만치 정확히 간지;러움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시계 소리-밤 소리(그런 것 이 있다면)-그리고-그리고- 분명히 퉁수 소리다
-<12월 12일> 중에서

이는 어린 상이 조모와 함께 누워 자던 시절 밤마다의 환상과 착각이다 애타게 그리운 자식에게 은밀히 들려 주는 부모의 퉁수 소리와 그 신호, 이것을 그는 기다렸던 것이리라 그러나 현실에서 종내 부모는 되찾으러 오지 않았다 이때 상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필자는 전술한 <슬픈 이야기> 중의 삽화 가운데 첫째 것에 주목한다 이 삽화는 선상에 우뚝 서 있는 팔 없는 두 남녀의 석고상이고, 화면 왼쪽 아래 모서리에 갑판 난간에 두 팔을 기대고 서 있는 여인의 사진을 첨부해 놓은 것이다 즉, [인정도 없도 팔도 없는 석고 상 같은 부모! 손가락도 3개나 없는 아버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두 손이 멀쩡한 어머니는 무엇하는가!]라고 무의식에서 외쳤던 것의 표현이라고 보겠다

비탄과 우울에 빠진 어린 상은 이리하여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손가락 장난'을 시작하였다. 손가락 장난, 그것은 2세 되기까지 옆에서 지켜봤던 이발사인 아버지인 손놀림을 그대로 해보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심정, 곧 동일시의 첫모습이다 수유시 모든 영아가 빤히 어머니의 얼굴 한가운데를 뚫어지게 바라보아 모습을 익힌다고 프랑스 분석의인 스피치(1955)가 말한 바 있거니와 상도 아버지를 닮으려는 그 손장난으로 그리운 어머니의 눈, 코, 입 같은 얼굴 중심부 것을 그리게 된 것을 그리게 된 것으로 필자는 이 점을 뒷날 상의 그림 소질과 화가 지망의 무의식적 동기로 간주하려 한다

업의 수영복을 태우는 '그'는 업에게 노해 있었고, '그'의 눈앞에서 자기 수영복을 태우는 업은 '그'에게 복수 행위를 하는 것이며, 병원과 동네를 불지른 T는 '그'와 자신에게 노해 있었다 즉 작품 속의 방화 원인은 그 공통 분모가 분노와 복수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의 정말 문제는 왜 이 작가가 작품 하나에서 방화를 각각 다른 인물을 통해 3 번 강조하고 있느냐, 즉 왜 상은 불, 방화에 집착해 있느냐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 볼 때 방화란 그 부모나 권위에 대한 무의식적 복수 행위요, 어린이게서 방화의 바릇이 있는 경우 대개 우울,불안,유뇨증을 동반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뇨증의 심리적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 역시 부모나 이제 준하는 권위에 대한 반항과 복수심인데, 상이 양자가 된 뒤 한때 그에게는 유뇨증이 있었다 즉 상에게는 아동기에서 부모와 백부,백모에게 향했던 복수심과 우울이 억압되어 오다가 이 작품을 통해 거의 위장,변형이 되지 않은 채 표출되고 있다

<12월12일>에는 왜 그리 사고 이야기가 잦은가 주인공 '그'의 광산 내 사고는 '그'의 무능으로 처자가 죽고 노모가 죽었다는 것에 대한 자책.죄악감의 해결 방법이었던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공사장에서 T가 당한 사고도 이렇게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 주인공의 친구 XX도 총기 오발 사고로 죽게 함으로써 상의 무의식적 공격욕(복수심도 포함)은 친구에게까지 향해졌음에 주목이 간다

어린이에게서 자해의 경향이 있는 경우 이 어린이가 우울 상태에 있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말이다 사고를 잘내는 어린이들은 연령별로 관찰한 통계에서프랭클(1963)은 특히 2~3세 반, 4~6세, 13~17세 층이 많다고 보고하며, 이것으로 보아 어느 특정 연령에 국한된 갈등이 그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강한 시사를 하였다 이러하건대, 상은 2~2세 반에 '기아'가 되었고, 4세에 친동생 운경의 출생으로 동기간 경쟁에서 패배한 열등감과 질투를 맛보았고, 15세에 '미술'이라는 대상을 상실 함으로써 프랭클이 말한 3가지 연령대에 각기 큰 상처와 상실을 입은 것이다 타해의 극단이 살인이 되고, 자해의 극단이 자살임은 재론할 여지도 없다

이로써 우리는 왜 <12월12일>에 죽음이 많은지 쉽게 알 수 있다 처자, 노모,XX,일본인 은인,업,주인공의 죽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빈처를 두고 감옥으로 가는 T, 전재산을 날리고 수용소에 들어가는 M의 비참함 같은 죽음과 비슷한 경우도 그렇게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이해가 안되는 것이 있다 즉, 왜 상은 작품에서 친구와 은인까지 복수하고 싶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불쌍하다고 일부러 빵까지 사먹여 주면서 [횟배 않는 팔삭동이]라고 그를 무시하였던 보성의 급우들, 여봐란 듯이 그림 학교에 혼자만 진학한 문종혁,동정에서 술과 기누코, 그리고 화실을 제공했지만 자기는 먼저 만주로 취직해 떠나버린 일본인 천상, 이들에게 상의 속마음이 감사하기만 했었겠냐고...

<12월 12일>에는 작중 인물 사이에 오해도 많다 아니, 우리가 흔히 쓰는 '오해'라는 단어가 주는 그런 부정 일변도의 그런 오해라기 보다는 인물 상호간에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이미 언급한 바 있는 /그/T,T의 처/업/M 상호간의 오해 이외에도, C의 사랑을 오해하는 업, 업의 용모를 통해 과거의 A를 찾으려는 C,언제나 받아줄 것으로 '그'를 보았던 C에서도 이런 관계가 나타나 있다 아마도 이런 인간 관계가 어린 시절의 상을 싸고 도는 불가사의였었고 고통스러운 여러 현상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이 작품을 쓰는 정신 작업 도중에 그 궁금해 하던 것이 실은 이런 것이었다고 문득 해결을 보았을지도 모르며, 이렇다면 바로 이것이 딜레이가 말하는 [불균형 상태인 자신의 인격(성격)을 바로 잡는 작업이 바로 창작 과정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에 논하고저 하는 것은 그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다 즉 왜 작가는 이렇듯 많은 오해만으로 덮인 인간관계를 소재로 하였냐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작가의 의식 세계에서의 '수많은'이란 것을 무의식에서의 '큰' 것으로, 똑같이 '오해'를 '의문'으로 바꾸어 보는 약간의 비약을 해본다 즉 [왜 부모는 나를 버렸느냐?]인 것이다

상을 논한 문학평론가와 그의 전기 작가들은 그가 양자로 간 것에 대하여 한결같이 그 원인을 당시의 봉건적이고 유교적인 사회문화 요소와, 부모의 적빈한 생활과 자식 교육에의 목적이라는 데에 두고 있다 정말 이것 때문이었을까 필자는 이런 것은 빙산의 바다 위에 일부이고 더 큰 다른 무엇이 그 밑에 있다고 본다 즉, 양자라는 것이 상의 생부,생모의 무의식에서 큰 저항없이 받아들여 졌다는, 아니 어쩌면 상 출생 이후 2년 간에 걸쳐 그렇게 할 생각이 그들 마음 속에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선 상의 생모를 보자 그녀는 성도 이름도 생일도 모르는 고아에다 곰보였다 그리고 그녀로서는 과분한 집안에 시집을 왔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열등감과 불안정감을 가졌을 것이며, 모성의 역할에 자신감이 낮았을 것이라는 것은 전술한 여러 가지 통계와 보고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더구나 18세였던 그녀는 어느 모로는 그녀 자신이 계속 남편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싶어할 어린애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또 시가에서는 그녀를 받아 주고 이름도 지어 주었으니 그녀는 은혜를 입었다는 정신적 부채를 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낳은 애기는 3일을 울지 않은 이상아였다 얼마나 주위의 반응을 겁냈는지는 뒷날 그녀가 [방고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3일이 지난 뒤에도 상이 조금만 않아도 [애미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을까 봐 계속 불안하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다음 논할 것은 그녀의 태몽이다 큰집 광 바닥에서 은접시와 은항아리를 발견했다는 것은 은기가 당시 그녀가 상상할 수 없는 최고의 값진 그릇으로 부의 상징이라 할 때 이 꿈은 [시모와 시숙은 몰래 재산을 숨기고 있다]는 그녀 무의식의 외침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그들이 분가시 몫돈을 못 받았다 하니 그럴 법도 한 해석이다 그리고 괭이를 팠다는 것은 공격성을 나타낸 것으로서, 이 두 해석을 합치면 [큰집에서 돈을 감추고 안 주어서 나는 화가 나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가 있겠다 상의 아버지도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로서는 자신도 없는데다 은혜를 입은 시숙에게 향한 무의식적 분노를 해결하는 길로써의 반동 형성의 방어 기재에서 나온 행동으로써, 또는 무의식적 죄책감을 해결하는 속죄의 수단으로써 시댁이 원하고 사회가 용납하고 그리고 남들에게도 동정 받는 길, 즉 아들을 양자로 주는 일석삼조의 방법을 택했던 것으로 필자는 분석한다 상은 그러니 버림받은 기아였다

이상은 기아라는 쪽의 사정이고 반면 기아 당하는 쪽은 [왜 나는 버림을 받았을까?] 라는 의문에 차 있지 않을 수 없고, 2세인 어린이로서는 [혹시 내가 나빠서, 무슨 죄를 지어서 나를 버렸구나!]라는 막연한 상상 밖에 못하였을 것이고, 이것이 성인이 된 뒤에도 나쁜 나는 죽어야 한다는 자학으로 무의식에 남게 된다 즉 우리는 상이 왜 자살과 죽음을 좋아 했는지의 근원을 하나 더 알수가 있다 하겠다

<12월12일>에서는 여자에 관한 것이 별로 없고, 있어도 이들을 냉혹하게 대하는 장면이 많거나, 아니면 등장하는 여자의 운명을 비참하게 설정해 놓고 있다

즉, 서두에 가난에 시달린 처가 해산하다 죽고, 맡기려는 노모를 박정히 거절하는 T가 있고, 그리고 노모는 움막에서 용사한다 A의 행방불명으로 C는 동시에 오빠와 애인을 잃으며, 일본인 은인은 까닭 모르게 여자에게 냉혹하다 왜 상은 작품을 통해 여자를 박해하는가,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이 여성 전반에 투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유발시킨 요인이 연상의 기누코와의 관계가 주는 긴장감이었다 현실에선 기누코를 통해 상은 모성을 찾으려 하였고, 이것이 작품에서는 업이 C에게서 찾으려는 것이 된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앉아 있는 여인에 공연히 신경을 쓰이는 장면도 상은 묘사했으나, 아마 그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르고 썼을 것이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는 여인,즉 곰보가 아니고 그 무엇이랴 저자는 여기서 상이 처한 현실과 소망,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증오의 양가성을 본다

<12월12일>에서의 모든 중요한 사건은 어두운 때와 어두운 곳을 찾아 일어난다 주인공은 저문 서울 거리에서 탈출을 생각하고 한 밤중의 서울역, 그리고 새벽 안개 자욱한 부산항을 떠나며, 노모는 어두운 움막에서 죽고, 주방장으로서는 밤에 일하며,불구가 된 곳은 갱도 속이었고, 동경의 여관서는 외출을 하지 않으며, 야간열차로 귀국하고 업도 저녁에 죽으며, T도 밤에 방화하고 주인공 역시 새벽에 철도 자살을 한다 왜냐, 상의 인간사에 나오는 보성 말기 함경도로의 여행일화가 있듯이 그는 밝을 때와 밝은 장소보다 어둠 속에서 더 안정을 찾는다.

우리는 손쉽게 그 까닭을 유년 시절 그가 거처했던 햇볕이 안드는 건넌방에서 찾을 수 있고, 더 깊이 분석한다면 그가 환상과 착각, 기대와 불안을 갖고 말았던 그 밤들을 생각해 낼 수 있다 (어찌 늙은 조모와 작고 어두운 방에서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겠는가...그리니 홀로 공상과 환상을 하는밖에...) 밤에 있었던 그 환상들이 작품으로 위장, 변형되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낮으로 상징되는 의식 세계와 어둠으로 상징되는 무의식 세계라는 것을 들어, 상이 가진 무의식의 정서가 이렇게 창작 과정이란 활동을 거쳐 작품 속 중요 사건의 때와 장소로써 표현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12월12일>의 주인공은 절름발이가 되며 처참하게 이그러진 용모를 갖게 된다 작가 자신이 서두에서 '그'가 바로 자신이라고 하였으며 또 그가 성숙한 성인으로서의 작가, 아니면 의식 세계의 작가, 또는 작가의 자아와 초자아(이런 경우 업은 작가의 이드) 일 수가 있음은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그렇다면 왜 상은 자신을 절름방이로 만들었으며, 왜 그런 자화상을 가졌던 것일까, 이것을 분석해보고저 한다

첫째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은, 정신적 불구를 육체의 불구로 표현한 것이 아니냐란 것이다 우리가 환자 진료에서 흔히 보듯 정신 질환 환자는 병인을 신체적인 것에로 돌리고, 기질적 질환의 환자는 정신적인 것에 돌리는 것과 같은 기전으로 보면 쉽겠다 상처를 반복해 입거나 좌절에서 오는 긴장감이 오래 축적되는 경우에는 마치 육체적 상처를 입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는데, 이런 장기간의 환경적 영향을 긴장성 외상이라고 분석가 크리스(1956)는 말하였다

둘째로 생각할 것은 [다리]가 상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신명학교 졸업 가까운 시절 체육을 싫어하는 상은 늘 핑계를 종기가 난 다리에 두고 때로는 종기를 고의로 악화시켜 체육을 빠졌었다 그런가 하면 거의 같을 무렵 그는 부모가 사준 운동화를 신고 무단 결석하고 시내의 골목길을 뛰어 다녔다 이는 잡화 행상하는 아버지, 묵을 떼어다 파는 어머니와 우연히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그리움에서일 것이고, 그리고 동시에 백부에게 냉대를 받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에서 그리고 증오하는 부모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뛰어'(질주)다녔을 것이다 '다리'란 그에게는 부모를 그리워하고 또 미워하는 감정의 갈등, 즉 부모에 대한 양가성의 상징이다 어린 그가 다리에 종기를 냄이란 [다리를 절며 어떻게 부모를 찾아 나간담!] 하고 자신에게 타일러서 그 갈등을 해소하려는 타협 수단이었고 그리고 백부의 사랑과 보호도 놓치지 않으려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셋째, 다리는 남성 성기의 상징이기도 하다 부모도, 취미도, 직업도 자기 뜻대로 정하지 못해 온 꼭두각시의 자신이란 거세 당한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 항목과 약간 관계가 되는 것으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궤도, 철도와 불구, 역사다 <12월 12일>에서 주인공은 궤도차에 치어 불구가 되며, 철도에 투신 자살하는데, 이 장면의 묘사가 참혹하며 깊다 그리고 <슬픈 이야기>의 두번 째 삽화를 보면 여기서는 벌거벗은 나무의 숲을 뚫고 철로가 그려져 있다 이것 뿐만이 아니고 <12월 12일>에 다시 주인공 옆자리에 한 철도국원을 등장시킨 것이다 즉 철도와 죽음이 있다

그러면 철로란 무엇인가, 지평선 너머에 가서도 언제나 합치지 않고 평행으로 달리는 2개의 선, 즉 큰집과 우리 집, 생부모와 양부모-이것이 상에게 불행을 가져다 준 운명의 지선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다음에는 <12월12일>이라는 제목 자체에 관하여 생각해 볼 때가 됐다

문학 평론가 이어령(1975)은 [......상은 숫자를 사물화하여 직관을 투입했다는 사실이다 이 임의의 수 12 역시 33이나 18, 69와 다르지 않다 만약 1년이 12개월이 아니라 18개월이었다면 18월 18일이라고 제목을 달았으리라]고 하여 12월이 일년의 끝나는 달임을 강조하였다 또 캬톨릭 의대 정신과 교수 김종은(1973)은 상의 시를 분석하는 가운데 자주 반복되는 언어의 예를 들어 상동성을 지적한 뒤에 이를 불안의 소산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위 두 가지 해석을 일단 동의를 하면서 나름대로 분석해 나가기로 했다. 우선 생각할 것은 본 작품의 서문격에서 자살을 이야기했고, 그리고 몇 년 지나서 <종생기>를 쓴 상으로 볼 때,12월은 자기 인생의 종말을 뜻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왜 <12월31일>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아심이 가는 저자는 우선 이렇게 일차적으로 해석을 해본다 즉, [크게는 이미 끝난 인생이나 아직 더 좀 살아야겠다]라고 이것 역시 상은 서문에서 [아직은 죽을 수가 없다]라 말하고 있다.

아버지의 사망 기록을 두 번 반복해 적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심리를 분석한 프로이트의 진단처럼 두 번 나오는 '12'라는 수는 또한 상의 불안, 또는 어떤 정서 상태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12'란 무엇인가 필자는 12를 나누어 '1'와 '2'로서 보고싶다 그리고 '1'은 상 자신이요 '2'는 두 집을 말한다고 보겠다 이렇게 하여 좀 전에 언급한 해석과 이것을 같이 놓고 생각해 보면 이런 해석이 유추된다 [2 쌍의 부모가 있는 나는 이 때문애 죽어야 겠다 그러나 아직 죽기는 이르다]

[12월12일]은 기록으로 보아 추측컨대 1929년 여름에서 1930년 여름까지의 어느 시기에 상이 그가 일하던 의주통 전매청 공사장에서 틈틈히 섰던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면 이 작품을 왜 하필 이 때에 썼는지, 바꾸어 말하면 그 당시 그의 환상과 무의식 세계에는 어떤 것이 있어 이것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는지를 분석해 보는 것으로 이 논문의 끝을 맺겠다

이 때에 그가 고등 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총독부 직장 생활을 시작한 때로서 그가 결심만 하면 가족과 가문을 탈출할 수 있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탈출하지 않았다 한편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탈출로부터 시작하여 10여년 후 돌아오나 가족,친구,자신까지 모두 파멸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따라서 상의 공상 세계에서는 [내가 지금 탈출한다면 이처럼 파멸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탈출하려는 소망 사이에서 오는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서 분리 불안이 고조되어 있었음을 말한다 하겠다 그리고 이 불안의 원천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옛날 [-버림받은 아이-] 시절의 참혹한 상처이다 그리고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이 백부와 상을 동시에 상징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1929년 분리 불안의 그 대상은 부모보다도 백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이상의 처녀작 <12월 12일>에는 작가의 환상, 백일몽, 무의식 세계의 내용과 정서가 약간만 변형, 위장된 채 (또는 불완전하게 승화된 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특색으로서, 창작 작업 직전까지 이런 것들에게서 오는 방출 압력과 긴장도가 크고 절실하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